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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쌍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최혜소(崔慧昭)가 개창, 처음에 옥천사(玉泉寺)라고 부르다가 헌강왕(憲康王) 때 한 고을[州]에 같은 이름의 절이 두 개가 있어 혼동을 일으켰으므로, 문전에 흐르는 쌍계에 연유하여 쌍계라는 호를 하사(下賜)하고 학사(學士) 최치원(崔致遠)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의 4자를 쓰게 하여 바위에 각자(刻字)하였다. 그 후 두 차례나 화재로 절이 소실되었으나 1632년(인조 10)에 벽암(碧岩)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에 의하여 복구 ·중수되었다.

최참판댁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산중에 묻혀 있는 우물 같은 호수’라 하여 산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명성산과 관음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며 봄부터 가을까지는 보트와 수상스키 등을 즐기고, 겨울에는 얼음썰매장으로 사계절 사랑받는 관광지입니다.

지리산생태과학관

지리산 자연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보전과 이용 및 동·식물 자연생태자료를 활용한 현장 체험 위주의 교육기회를 제공, 새로운 창의적 체험교육 보급을 목적으로 건립되었습니다. 1층에는 월별 테마에 맞는 체험프로그램과 지리산의 자연자원 및 문화 전시가 이루어지는 안내데스크, 체험교육실, 기획전시실, 표본전시실이 있으며 2층에는 생태과학실, 생태체험실, 수생태야생화공간 및 전망대가 있어 지리산과 섬진강, 하동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생화단지에는 지리산의 다양한 희귀야생화 및 자생수종이 식재되어 있습니다.

하동차문화센터

2007년 10월 25일부터 2008년 6월 5일까지 총 공사비 9억 1246만 원을 들여 전시관 리모델링과 전시 시설 제작 및 설치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공사 기간 8개월 동안 제1전시관·제2전시관과 차 갤러리관, 차 판매장이 신축되었고, 전기 시설·통신 시설·소방 시설 공사 등이 실시되었다. 총 공사비 가운데 하동차문화센터 전시관 리모델링 공사에 7억 2000여만 원이, 차 판매장 신축 공사에 약 2억 원이 소요 되었다. 현재는 경관 조성 사업으로 식재한 능수벚꽃나무와 이팝나무, LED 태양열 가로등이 화개천과 어우러져 새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화개십리벗꽃길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 19번 국도. 그 길목에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며 번성했던 화개장터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예전의 북적대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4월이 되면 이곳 역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의 초입까지 이어지는 그 유명한 ‘십리벚꽃길’ 때문이다.

화개장터

화개장 또는 화개시장이라고도 한다. 경상남도 하동군과 전라남도 구례군·광양시의 접경 지역에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속한다.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발원한 화개천(花開川)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인 이 지역은 과거에 섬진강의 가항종점(可航終點)으로서 행상선(行商船)이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상류의 지점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배경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내륙에서 생산된 임산물·농산물과 남해에서 생산된 해산물 등을 교환하는 장터가 형성되었다.

섬진강 레프팅

섬진강 레프팅은 곡성군 청소년야영장에서 운영하는 섬진강기차마을레포츠에서 체험할 수 있다. 레프팅 코스는 ‘청소년야영장 → 심청여울 → 드센바위 → 압록유원지’로 약 5km,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지리산 피아골

길이 약 20km.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의 중턱에서 발원한 맑고 풍부한 물이 임걸령 ·불무장 등의 밀림지대를 누비며 피아골 삼거리 ·연곡사 등을 지나 섬진강으로빠진다. 폭포 ·담소(潭沼) ·심연이 계속되는 계곡미가 뛰어나다. 특히 이 곳의단풍은 지리산 10경(景)의 하나로 손꼽힌다.

화엄사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5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 고구려 안원왕 14년)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7년(신라 문무왕 17)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곡성기차마을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수풀이 우거진 철로 옆 조용히 남겨진 역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영업이 중지된 간이역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창고로, 살림집으로, 사무실로, 폐가로 그 용도가 다양하게 변화한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깬 역이 생겼다.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에 위치한 옛 곡성역은 새롭게 지어진 곡성역보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